잔뜩 헝클어진 머리와 두툼한 수면바지 차림으로 식탁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인터폰 화면에 리본 달린 화분이 보여서
'아무래도 집을 잘못 찾으신 것 같은데 내가 대답안하고 있으면 계속 저렇게 무거운 화분을 들고 서 계시려나' 싶은 마음에
(보통은 종교인들이 초인종을 자주 눌러서 대답을 잘 하지 않는다)
잘못 오셨다고 대답해주려 스피커를 눌렀는데 ○○○ 사모님댁 아니냐네?
사...사모님이라는 호칭이 굉장히 어색하지만
"네 맞는데요?"
그제서야 인터폰 속 리본에 적힌 푸근씨의 회사명이 보였다.
결혼기념일이라고 회사에서 화분을 보내준 것이었다.
내 몰골은 생각도 못하고 반갑게 문을 열고 보니 배달기사님이 쭈뼛쭈뼛
"결혼기념일이시죠? 아...그런데 그만 리본에 축생신이라고 써왔네요. 이런 일 잘 없는데 리본 잘라내게 가위 좀..."
- "괜찮아요~ 그냥 두세요~"
리본 안의 글자가 뭔 대수람!!! 생각도 못했던 거라 좋기만 한 걸~
집에는 작은 화분들만 있어서 큰 화분이 갖고 싶던 차였다.
기분좋게 배달기사님을 돌려보내고 화분에 꽂혀 있던 봉투를 열어보니
자주 애용하는 파리바게트와 베스킨라빈스 이용할 수 있는 상품권이 짠!
우왕~~>_< 더 기분 좋아졌다!
푸근씨에게 화분이랑 상품권이 왔다며 인증사진을 찍어 카톡을 보내니
전화가 와서는 "깜짝 이벤트~"라네.
자기는 올 줄 알고 있었다며...
꽃바구니 or 화분 중에 선택하는 건데 내가 화분 좋아하니 화분에 체크했다는.
"아~ 정말 좋아 고마워♥"
그런데 화분의 정체를 알아야 자리를 정할 거 아님?
양지, 음지, 반그늘 중 어디에 둬야할까?
그래서 몇시간동안 폭풍 검색
'관엽식물', '하트잎', '갈색줄기' 등등등 꽃배달 사이트도 들어가보고
수백장의 사진을 살펴보았지만 딱 "이거다!" 싶은 것은 없었다....
너 대체 정체가 뭐냐?
그러다 종합해보건데 알로카시아의 한 종류일거라 결론을 내렸다.
일반적으로 키우는 알로카시아 '오도라'는 아니고,
거북등을 닮았다고 하는 알로카시아 '아마조니카'와 비슷하긴 한데
그보다는 색깔이 연하고 윤기도 덜하며 잎 외부의 구불구불한 모양은 없지만
잎맥의 느낌과 줄기의 모양과 색이 비슷하고 결정적으로 일액현상!
처음 집에 왔을 때부터 잎에 물방울들이 고여있어서 배달오기 직전에 분무를 했나보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몇시간이고 물방울이 계속 맺혀 있는 것이었다.
그래도 화분이 자체적으로 물방울을 만들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런저런 검색을 하다 우연히 알로카시아의 특징중에 일액현상이 있다는 글을 읽게 되었다.
그래서 알로카시아의 한 종류일 거라고 추측한 것인데
얘가... 은근 키우기 까다롭다는...
어떤 글에선 그늘에 둬도 된다고 하고 어떤 글은 햇볕에 약하나 햇볕을 봐야한다고도 하고...-_-
온도와 통풍이 특히 중요해서 자칫하면 벌레가 생긴다는...
흰가루 벌레 때문에 라벤더와 레몬타임이 죽어나간 걸 생각하면 으 끔찍!
그래서 혹시 모르니 얘는 홀로 두는 걸로.
자리는 아직 정하지 못했는데 일단 작은 방 창가 앞에 뒀다.
통풍과 햇볕과 온도를 조절해주기 비교적 쉬운 장소로 정한 것인데 세탁실 드나드는데에 좀 걸리적거린다.
그런데 화분 물받침이 작아서 쉽게 자리 옮기기도 불편하고 조만간 바퀴달린 받침대나 좀 더 큰 받침대로 바꿔야겠다.
그리고 일액현상이 생각보다 심해서 화분 주변으로 물방울들이 여기저기 떨어져있어서 바닥에 수건 깔아놨다.
푸근씨에게 이 일액현상이 천연가습기 역할을 해주는 거라고 하더라~고 말했더니
안방에 두자는데 생각을 좀 해봐야 할 것 같다.
이 물방울에 독성이 있다는 글도 있어서... 믿어야할지 말아야할지... 찝찝.
그나저나, 오늘은 3주년 결혼기념일인데
푸근씨는 저녁에 PT약속이 잡혀있고, 결혼기념일이 기념일처럼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 내일 저녁에 고기나 먹으러 갈까 생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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